대학교 2학년 겨울,
나는 유럽 교환 학생을 마치고 귀국하였다. 한국 도착 전까지 이탈리아 남부의 소렌토, 나폴리, 포지타노를 도는 '유랑 자전거 여행'을 하였는데, 눈이 시리도록 푸른 지중해와 따뜻한 이탈리아 남부의 햇살, 지역 특산물인 노란 레몬으로 만든 시원한 레몬에이드, 그리고 더위 속 생기있는 레몬 나무들의 초록 잎사귀, 그 싱그러운 색채의 대조가 기억에 꼭 남았다.
때마침 한국에서는 아이유의 노래 Zeze가 나왔는데, 포지타노의 향수에 취한채로 라임오렌지나무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한국에서 레몬 나무를 키우면 낭만있을 것 같았다. 인왕산 아래 서촌에서 햇살이 강하고 통풍이 좋은 마당있는 집에 살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크면 마당의 나무들 옆에 옮겨줘야지 하며, 대뜸 먹던 레몬의 씨앗을 심어 물을 줬었다.
나의 성격은 본래 무엇인가를 보살피지 못하는 성격은 아니고, 키우는 동물도 장수시킨다. 그러나, 나는 정성들인 보살핌을 받지 못할 생명은 절대 입양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있어, 고등학교 과학실에 방치된 흰 실험쥐 두 마리의 입양 (및 자연사) 이후 움직이는 동물은 아무리 예뻐도 들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누구는 책임감이 강하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그것보다는 나의 것들에 대한 애착이 많아 마음을 쓴 무엇인가를 떠나보내는 것을 잘 못한다.
당시 가을이었는데, 나의 레몬 씨앗은 겨울을 지나 이듬해 늦여름까지 30cm를 자랐었다. 그 해의 가을에, 나는 이사를 가야했었기에 계획대로 마당에 심어주고 떠났지만, 시린 겨울에 얼어있을 레몬 나무의 아직 많이 연약한 이파리를 생각하면 지금까지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런 글을 쓸 정도이니, 또 마음을 너무 썼나 보다.
나는 다시 식집사가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주현 언니가 식물 사업을 시작하며 나에게 화분을 보내주겠다고 하였을때, 나는 솔직히 기대 반, 걱정 반인 상태였다. 나의 기대는, 바로 언니가 큐레이팅하는 본투비 그린 식물들이 너무나 예쁘다는 것을 알아 소유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나의 걱정은, 일전의 '나의 어린 레몬 나무'처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지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쓸데없는 걱정은 대체로 미래를 향해 있다).
얄팍한 소유욕에 양심을 누르고, 호기심에 식물을 배송받았다. 정성스럽다 못해 철벽방어 수준의 포장을 벗기는데, 배송중에 모래 한 톨도 쏟아지지 않은 것을 보고 대학시절부터 꼼꼼했었던 언니의 성격이 생각났다.
언니가 직접 디자인 한 케릭터를 식물 사이에 올려두고, 함께 동봉된 태그 뒤를 살펴보니 식물 이름과 입양일을 적으라는 빈칸이 있음을 발견했다. 빈칸을 채우지 않으면, 이 식물은 주인이 없는 고아라는 느낌이 들어 문득 슬퍼졌다.
묘한 압박감을 느끼며, 나는 펜을 들고 이름 없었던 알로까시아를 '민상추'라 명명했다.
나는 식물을 선물받는다면, 언젠가 시들 꽃보다 생명의 지속성이 있는 화분을 받고 싶어했다는 것을 가까운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위에, '꽃보다 더 오래 기억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아 화분을 샀다' 와 같은 멘트를 날려주면, 혼자서 깊은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감동 없는 감동을 만들어내서 받는다. 결국 선물은 다 스토리텔링의 값 아닌가.
아무튼, 명명식도 끝냈으니 나의 식물은 이름이 생겨,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어주었으며,
이윽고 나는 다시 식집사가 되었다.
본투비 그린은 순간의 예쁨이 아닌 자라나는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소중한 분들에게 선물하고자 하는 분들은, 아래 링크를 방문해 보시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