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시작하는 첫주에 꼭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는데. 4개월이 지나서야 글쓰기를 하다니, 이렇게 바쁘게 시간을 보낼 줄 몰랐다. 항상 왜 입학글만 있고 졸업생들이 후기 글을 남기지 않았나 했는데, 바빠서 그랬던 것이다. 방학 틈을 타 짧게나마 느낀 점을 테마별로 요약해본다.
# 과목 수강
내가 몸담고 있는 MSc Public Health는 첫 학기 때 6개 과목을 수강해야 한다. 일반 석사는 4개 과목을 듣는데, 6개 과목을 듣는 이유는 공중보건학이 여러 학문을 종합하는 학문이라 그런 것 같다. 위, 아래, 옆 학교 및 비슷한 학교들 다 둘러보아도, 우리 과만큼 빡세게 돌리는 전공은 없었다. 장단점이 있다면, 보건학을 하고 싶은데 어떤 것을 전공하고 싶은지 잘 모를 때 여러 과목을 체험할 수 있어 좋고, 취업할 때도 광범위한 과목 덕분에 이것저것 지원해볼 수 있다. 또한, 뷔페에서 입맛에 맞는 과목을 골라 공부할 수 있어 공부할 맛이 난다. 단점은 6개 과목 모두 중간 과제와 기말고사가 있기 때문에 4개 과목만 하는 다른 과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바쁘다. (다른 과들은 쉬는데, 우리 과만 겨울방학 동안 과제를 붙잡고 제대로 쉬지 못한다.) 옆 학교인 UCL 약대 다니는 친구와 같은 기숙사를 살았는데, 학기 중에는 똑같은 수준의 빡셈이다. (방학은 그나마 우리가 조금 더 낫다.)
1학기 과목에는 통계나 역학처럼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과목이 있고, 그 외에는 보건경제, 정책, 그리고 보건 이슈와 같이 정보와 이론을 배워가는 과목이 있다. 필수 과목이 4개이고, 선택 과목은 2개인데, 세부 석사 전공을 달고 졸업하려면 stream을 타야 한다. Stream을 타려면 1학기 수강 과목 중 선택 과목에서 해당 stream에 맞는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Stream을 타는 사람은 의외로 별로 없다고 느꼈는데, 대부분 메디컬이라 stream에 크게 의미를 안 두기도 하고, 제한을 두지 않으면서 원하는 과목을 더 들으려고 하는 것 같다. (취업에 걱정이 없는 사람이나 특정 stream에 관심이 없으면 안 타는 것 같다.) 참고로 매년 Fail을 받아 재시험을 치는 학생들의 비율은 10%, 학위증을 받지 못할 확률은 5%이라고 해서 걱정을 조금했지만, 선배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한국인이라면 학위증을 받는다고.
그럼 타는 사람은 어떤 것을 타는 것인가. 주변을 보았을때, 나중에 병원 운영을 하려는 (혹은 물려받을) 큰 포부를 가진 의료 인력들중에 Health Services나 Health Promotion을 선택한 사람들이 꽤 있었고, NGO를 세우고 운영하는 동기, 그리고 이제 그 분야로 들어가고자 하는 동기 몇몇은 Health Promotion을 선택했다. Stream 선정은 원하는데로 가능하며, 졸업 요건을 위한 시험만 통과할 자신이 있다면 원하는 대로 수강할 수 있다. 과목 수강도 마찬가지인데, 과목을 수강해보고 1주일이 지나기 전에 이건 아니다 싶으면 수강 변경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다행이자 장점이다.
2학기가 되면 논문 고민과 함께 더 심도 깊은 선택 과목들을 배우게 된다. 어려운 과목들이 많기 때문에 자신이 없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래서 중간중간 쉬는 과목들을 넣어야 한다고 하지만, 취업이 목표인 나는 빡센 과목들만 담아 들었는데 진짜 힘들었다. 3학기에는 논문과 함께 과목 하나를 듣는다. 꿀팁 하나는, LSHTM은 자기 과 이외의 과에서 딱 한 개의 과목을 수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취업이 잘 되는 Clinical Trials 과목을 고민하다가, Pharmacokinetics를 다루는 Novel Drug Discovery를 수강했다.
아래는 내 수강 정보이다. 보이는 몇몇 말랑한 과목은 별로 듣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듣게 된 필수 과목들이다.
Basic Statistics
Basic Epidemiology
Health Economics
Issues in Public Health
Health Policy, Process & Power
Principles of Social Research
Statistical Methods in Epidemiology
Economic Evaluation
Economic Analysis for Health Policy
Health Decision Science
Novel Drug Discovery & AMR (-> 2학기 통계를 버틸 수 있으면 그냥 Advanced Stats로 바꿀까 고민 중)
공부 이외에도 할 수 있는 활동들과 소속될 수 있는 13개의 센터가 있다. 학회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여기서의 활동이 논문 주제 수급이나 네트워킹, 박사 연계, 이력서 채우기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살짝만 공유하고 다음번에 글을 쓸 예정이다. 나는 백신 센터 소속인데, 전 직장 연관 교수들의 이름이 이메일로 날아오기도 한다.
#학생 Demography
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과는 의사가 체감상 85% 이상이다. 학교에 의사가 왜 이렇게 많은지 봤더니 영국 및 영국 의대에는 intercalation이라는 제도가 있어 1년 동안 수련을 하거나, 같은 학교 타 전공이나 석사에 지원하여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 제도가 영국 연방국가 의대에도 적용되어서, HKU 의대생들도 많다. 아무튼 LSHTM을 상대적으로 친숙하다고 느끼는, GP나 공중보건의, 보건정책을 전공하고자 하는 의대생들이 우리 학교로 많이 온다. 따라서 나이대는 21살 부터 60세 까지 있다. (60세 분은 심지어 의사이자, 변호사이자 사업가이다ㅋㅋ. 학생회장 지원을 하셨는데 경력과 근거가 너무 탄탄해서 다들 입이 벌어졌던...) 그리고 어떤 분은 이미 Boston Medical Journal 편집자였다.. 왜 오신걸까. 의사에게 인기과는 단연 Public Health 와 Health Policy, Planning Finance (HPPF)인데, LSE와 LSHTM 두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매력인 것 같았다.
석사 지원 막바지에 일과 병행하느라 내가 듣고 싶었던 핵심 과목인 Health Policy, Planning Finance (HPPF)의 Pharmaceutical Economics and Policy가 너무 듣고 싶었는데, LSHTM Public Health의 이름값 때문에 PH를 지원한게 살짝 아쉽다(..는 거짓이고 사실 정신을 못 차리고 PH에 이 과목이 있는 줄 알았다;;). HPPF는 LSE-LSHTM 이중 과정인데, 하필 LSE쪽 과목이라(도강은 할 수 있지만) 아무리 해도 정식 수강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만 알았다면 차라리 LSE International Health에 지원했을 것이다. 지원 당시에는 몰랐지만, LSE Global Health는 국제보건을, International Health는 학생들을 제약회사나 컨설팅 업계에 취직할 수 있는, 선진국 위주의 공중보건이나 Private 보건을 다룬다(아는 사람만 안다). 또한 LSE International Health 학과 사람들만 제약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거기서 나온 데이터들로 논문을 쓸 수 있다. Pharmaceutical Evaluation을 직접해보는 경험이라니... 학비는 그만큼 높지만, 취업에 정말 너무 좋은 기회이다. 한국에서 직장잡기에도 런던 정경대가 낫지 않나? 싶다. 공중보건 학문 정통성으로는 LSHTM이지만(or Johns Hopkins?), 만약 다시 선택하라고 하면 LSHTM도 존스 홉킨스도 아닌 런던 정경대로 갈 것 같다 (아니면 차라리 가성비의 성균관대 제약산업학과.)
아참, HPPF 과정은 6월에 Geneva WHO 본부로 여행을 보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비 각출+여행이지만). 여행은 선택이지만, 그래도 과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가는 추억을 쌓을 수 있는게 부럽다. 사실, HPPF는 PH를 부러워하고, PH는 HPPF를 부러워하는 것 같다.
학생들의 국가 및 대륙 분포는 매우 고르다. 이렇게 고루 섞인 집단은 영국에서 따로 찾지 못할 것 같다. 옆 학교 LSE는 확실히 영국인 아니면 아시아인이 과별로 쏠려 있는데, 우리 학교는 그렇지 않아서 모두가 어느정도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석사이니 만큼 동년배 학생들이 각자의 환경에서 느끼는 인생고민을 들을 수 있다. 그치만 모두가 시험과 과제 앞에서 공평하다는 점. 사람들은 뭐 다 여유있고 긍정적이고 좋다.
#한국인 선배들 및 동기
해외에 나와서 한국인들과 왜 노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또 한국인 집단이 없으면 아쉽다. 2024년에 들어온 석사 한국인 인원은 검머외 3명을 포함해 총 11명이다. 인원이 한 손에 들어올 정도였던 작년 기수에 비해 진짜 많은 편이라고 한다. 각자 배경은 국제/공중보건, 간호사, 제약회사, 외과 의사, 수의사, 한의사 등 매우 다양하다. 모두 잘 놀아서 각자만의 외국인 네트워크에서 개인 플레이를 아주 잘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꿀 집단은 '한국 재영보건모임'이 있는데, 이는, LSE, LSHTM, KCL, UCL 등 근처 학교의 메디컬 학생과 보건 석사 및 박사생들이 모여 운영하는 자발적인 학회이다. 이 모임에서 과목 선정, 과제, 연구, 현지 취업, 박사 지원 등 여러 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연말연초에 모이는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영국에서 학업을 마친 사람들을 위해 한국에서도 매년 모임을 열고 있는데, 한자리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재영보건모임 인원 중 박사와 특히 갓 졸업한 현지 취업생 선배들이 감사하게도 후배들을 위해 좋은 물질적, 학업적 리소스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꼭 네트워킹해보길 추천한다.
#솔직히, 석사 오기 전에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정말 솔직하게. 국제 보건을 6년정도 하면서 살짝 좀 질린 상태에서 석사를 왔는데, 조금 더 일찍 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유는 꿈이 아직 살아있는 상태에서 와야 보건학 공부가 더 즐겁고, 좀 더 전문적인 일을 통해 금전적인 보상을 더 빨리 받으면서 자아효능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일을 하다 온 분들을 위해 좋은 소식을 드리자면, 일하다 오면 공부하는게 일하는 것보다 5배 정도 스트레스가 덜하다고 전해주고 싶다. 조금 더 일찍 왔었으면 하는 두번째 이유는, 페이 낮은 공공직보다는 사기업을 가고 싶은 생각이 이미 일을 하면서 생겼기 때문에 공중보건 공부에 회의감이 살짝 들 때도 있다. 다른 사람의 떡이 커보이는걸까. 나와 반대로 메디컬 업무를 하다가 그만두고 공공을 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호불호 없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곳은 돈을 많이 주는 외국계 제약회사나 Medical 컨설팅이다 (Big 4 컨설팅에 health analyst를 뽑는다는걸 와서 알았다). 조금 이상했던게, 은근히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사기업을 가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학교의 명성을 챙기면서, 실리를 추구하는 걸까.
학교에 졸업 전의 학생들을 1년 전부터 채용해가려고 하는 보건 관련 회사가 엄청 많은데, 또 경쟁이 치열하다고 생각된다. 한국을 떠나 세계로 취업을 희망한다면, 기회가 많이 생기기 때문에 졸업하고 정말 좋은 직장에 다닐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미 취업한 선배들도 많기 때문에 연결이 잘된다. 다만, 한국 취업을 생각한다면 조금 불리할 수도 있다. 다른 선진국은 메디컬 제외 고연봉 일자리가 엄청 많은 반면 한국의 내수시장은 작기에 공중보건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한국 취업시장에 메리트가 있지는 않아, 외국 기업이나 국제기구를 갈 것이 아니면 차라리 전문성을 좁혀서 MSc Data Science나 MSc Medical Statistics 와 같은 Skillset을 공부할 수 있는 과를 가는게 취업에 유리하다. 한국에 돌아가려는 비메디컬로서, 어렵더라도 고용이 잘되는 통계 과목을 집중적으로 해야했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원래 정책 희망자였지만 2학기 정책 수업을 싹 빼고 빡세게 통계 및 경제 과목을 돌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공공에서 사기업으로 돌리기 많이 어려운 것 같다.
이거는 여담인데, 기회는 엄청 많지만, 나오는 인턴 포지션을 꿰차는게 또 마냥 쉽지는 않은 것 같다. 포지션이 우리 학교에만 홍보되는게 아니라, 다른 학교에도 홍보가 되고 있고, 외국인 전문직 친구들도 지원을 같은 곳에 하고 있어서, 대학교 때 부터 외국계 기관에서 큼직큼직한 경력을 쌓은 친구들이랑 경쟁하는게 쉽지는 않다고 느껴졌다. 한국에서 무조건 면접은 갔던 나인데, 해외에서는 인적성 보기도 전에 서류 탈락을 한다. 내가 지원한 포지션 이야기인데, 그 1개의 포지션에 1,300 개 넘는 인원이 지원하여 서류 발표만 2개월 늦어졌다고 양해해달라고 이메일이 왔다. 심지어 정식 포지션도 아니라 제약회사랑 함께하는 단기 연구 자리(무급)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여, 면접에만 10:1 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고.. 서류 합격한 의사 친구가 말한다.
그래도 괜찮아.. LSHTM 로고가 예쁘잖아? 예쁘면 됐어 한잔해~
(이러고 캠브릿지 놀러가서 캠브리지 후디 샀음)